Part I
그는 바다의 아들이었다,
거의 평생을 서울에서 지내 왔지만.
지난 몇 년간 인생은 그에게 특히 친절하지 않았기에
바다의 아들은 수개월간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가 사는 노래방 건물 3층 고시원에서는
온도도 습도도 바닥도 무엇 하나 잠자리를 편하게 하는 요소가 없었다.
그는 원래는 바다의 아들이었다,
거의 평생을 서울에서 지내 왔지만.
대도시의 소음, 차들의 매연, 더러운 거리와 주위 사람들의 무례한 행동에 그는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용한 별들 아래 선선한 바닷내음을 맡으며
여러 시간 작살로 고기를 잡아 몸이 적당히 피곤해진 다음에야 편안히 수면을 취할 수 있는
그는 원래는 바다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날도 그는 극심한 피로에 억눌린 채
출근하기 위해 어린이대공원역 7호선 열차에 올라탔다.
출근길 열차에서 앉아서 간 적이 몇 번이나 되던가.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나 정말 피곤해. 오늘은 정말 앉아서 가고 싶다.’
앞의 자리에 앉아 있는 아줌마처럼 생긴 아가씨는 껌을 좍좍 씹으며 PMP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수개월간 수면 부족에 시달려온 그에게
전철에 앉아서 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은 큰 사치였다.
Part II
그런데 바로 그날 바다의 아들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앞 자리에 앉아 있던 아줌마처럼 생긴 아가씨가 강남구청역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이게 기적인 건 아니다)
바다의 아들은 생각했다.
‘아… 두 정거장 남았네. 이거 앉아야 돼, 말아야 돼?’
마침 그날따라 특히 잠을 못잔 그는 자리에 앉기로 결정했다.
그의 몸이 지탱하던 70 kg의 무게를 전철의자에게 전가하는 느낌은 가히 나쁘지 않았다.
그의 몸은 모처럼의 휴식에 환희를 나타냈다.
‘졸면 안 되는데…’
단지 몇 초가 지났을 뿐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어? 고속터미널? 아이씨, 뭐야, 졸다가 못 내렸네…’
“… 저씨! 아저씨!”
“헛!” 몸을 뒤흔드며 그는 잠에서, 그리고 고속터미널 역까지 왔다고 생각한 꿈에서 깨어났다.
“아저씨, 일어나세요!”
“음? 아주머니, 여기가 어디예요?”
“어디긴 어디야, 종점이지. 온수역이예요, 온수역! 빨리 내리세요!”
바다의 아들에게 일어난 기적이란 이것이었으니,
태양이 춘분점에 다다르기 직전의 위치에서 지상에 가하는 복사에너지와
최근의 이상기온으로 인해 설정을 조절해 놓은 전철 내의 공조시스템과
어려워진 경제를 반영하듯 적당히 적어진 탑승객 수의 체온,
그리고 전철 차량 내의 여러 빛, 음, 열환경적인 요소들이 종합하여
바다의 아들이 편히 수면을 취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든 것이었다.
종점에 와서 아주머니가 깨우지 않았다면 그는 얼마나 더 오래 잤을지 모른다.
Part III
바다의 아들은 회사 팀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이세요?”
“어! 왜 안 와!”
“저 회사까지 가려면 너무 오래 걸리게 생겼는데 오늘 하루 그냥 쉬겠습니다.”
“이런, 선어브더비치 (바닷가의 아들)! 어떻게 된거야?”
“네, 제 생각엔 태양이 춘분점에 다다르기 직전의 위치에서 지상에 가하는 복사에너지와…
… 그래서 깨어 보니 온수역이더라고요.”
“지금 온수역인거야?”
“에… 지금 당장은 장암역입니다.”
“왜 또 장암역이야?!”
“네, 온수역에서 반대 방향으로 전철을 탔는데요,
제 생각엔 최근의 이상기온으로 인해 설정을 조절해 놓은 전철 내의 공조시스템…
종점에서 깨우지 않았으면 아마 계속 자고 있을 겁니다.”
“에휴, 이런 한심한 선어브더비치 (바닷가의 아들)! 그 정도면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
“헤헤… 그보다 잠을 자러… 2호선 열차를 타러 가는 중입니다.”